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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26 잔재들 (4)

잔재들

해피뉴이어. 새해복많이받으세요. year of the ox.

우리 인간들은 무엇이든 간에 간판 붙이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새'로운 것이라는 간판은 더더욱 좋아하는 것 같다.
새 집, 새 학교, 새 학용품, 새 남친, 새 옷, 새 가구, 새 식구, 새언니, 새 나라, 새해 ...
뭔가가 새로우면, 새로운 기회이구, 깨끗하고 깔끔한 도화지 위에
다시 한번 붓을 그을 수 있는
'새'
기회가 온 것 같아서 그렇게 집착적으로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시작이라고 하고, 새로운 출발이라고 해도. 잔재들은 남기 마련이다.

12월 26일 또치는 오래 전에 오클라호마로
1월 12일 올리브는 눈보라 속에 불안해 하며 세인트루이스로
1월 25일, 어제. 드디어 시박이까지 설날을 맞이하며 한국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잔재들.

텅빈 집에 들어 와 멍하니 앉아 있다가, 깜짝 놀란 새 룸메 코트니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슬퍼서도 힘들어서도 아니고, 뭔가. 걍, 의식을 치루듯, 한번은 쏟아내줘야 했나보다.
그런 후 엉망인 마음을 추스리려고 그랬는지 엉망인 집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설겆이 하고, 빨래도 하고, 부엌 청소도 하고. 그런데 잔재들이 하나 둘씩,
무슨 두더지 놀이라도 하듯 누르면 나타나고 쳐내리면 또 쳐 올라오고

또치가 오클라호마의 느낌이라고 준 빨강색 양말 한 쌍.
올리브와 시박이 남기고 간 말도 안되는 팬티(!)들과 랜덤한 양말들.
나는 절대로 이용하지 않을 것만 같은 올리브의 팬케익믹스와 시박이의 부침가루.
알아보지 못하는 각종 화장품들, 빈 꽉들, 화장솜들, 머리끈들.
시박이가 가기 전에 곱게 빨아 놓고 정작 챙기진 못한 파란색 마스크.
끊임없이 나오고 나오고 나오는 올리브표 기차보다 긴 머리칼, 시박이표 꼬불이 머리칼.

...

그리고 웃음소리들, 숨소리들, 소파의 무게들.

없어져도, 그 없어짐이 없어지지 않는 이 존재의 무게.
누가 존재는 참을 수 없게 가볍다고 했냐?

이제 황소를 타고 신나게 앞으로 전진해야 할 설이라고 하길래.
떨쳐보내려는 마음으로 일기를 시작했건만. 뭐 이리 따운이더냐.

사실, 보이는 것처럼 우울하진 않아, 그냥 치워도 치워도 녀석들의 것들이 나타나서 웃겨서 적어본다.
여자들이 뭐 이리 칠칠맞나 싶다. 뭐,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말야.

그래도 올리브는 내가 준 스노우 부츠는 꼭 신고 가고
시박이는 그 무거운 캘빈과 홉스 만화책들을 죄다 이고 공항까지 세이프- 하더라.
지들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놓고 갔겠지.
팬티랑 양말은 버리노라.
마스크랑 머리끈은 내가 접수한다.

흠.

흠흠.

모두 다.
새해복많이 받아라.  

2009/01/26 14:50 2009/01/2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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