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am.
꿈뻑.
꿈뻑.
꿈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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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1) 일주일 내내 링겔 맞듯 마신 커피 백잔.
2) 한달동안 1주 3-4번 꼴로 맞이한 밤샘의 습관.
3) 아침의 해가 뜨면 브루클린 나의 작은 집을 떠나 방랑의 여름을 시작한다는 사실.
하루 종일 머리 질끈 묶고, 앞머리 삔 만개 꽂아서 넘긴 채 대청소를 했다.
바닥은 반딱 반딱, 먼지라고는 한 톨도 보이지 않는 이 집에 앉아
가방 4개, 상자 2개에 촉촉촉 들어앉은 내 물건들에 둘러 싸여
강욱이랑 즐거운 통화를 마치고
11시경 잠들었다.
반딱이는 바닥을 두고 떠나야 하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껴안고 잔 이요르가 주인님께서 너무 예쁜 꿈을 꾸는 걸 샘했는지
1시경에 두 눈이 번떡 뜨이더니.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남아공에 있었을 때, 새학기가 되면 꼭 기대되는 게 있었다.
물론, 여느 초딩생처럼 즐거운 방학을 뒤로 하고 다시 교복 입고 츅츅츅 학교 가야 한다는 것이
막 좋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새학기가 되었기에, 꼭 기대할 수 있는 게 있었다.
새 교과서 싸기.
우리 학교의 규칙이었는지, 그냥 엄마 아빠가 시킨 거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새 교과서를 구입하고 나서는 꼭 꼭 꼭
새 비닐을 사서 새 교과서와 새 공책 위에 커버를 싸주곤 했었다.
앞으로 한 학기 동안의 학업이 그만큼 빡셀 거라는 각오였는지,
하이튼 그 놈의 새 책 싸기 타임을 난 몹시도 즐겼다.
언니랑 손 잡고, 주머니에 두둑한 돈을 느끼며
피캔페이 마켓 옆에 있는 작은 문구점에 들어가
책 싸는 비닐과 스카치테이프를 몇 개 샀다.
그리고는 집에 가서 함께 새 교과서에게 예쁜 새 옷을 입혀주는 시간이
참 좋았던 기억으로 남는다.
반딱반딱한 비닐로 쌔끈하게 싸인 교과서들을 책가방에 넣어 놓고는
밤 늦도록 언니랑 수다 떨다가 잠들었던 것 같다.
(수다의 내용은 일급비밀이기에 이 곳에 공개할 수 없다.)
반딱반딱한 바닥을 보니까
갑자기 그 때 생각이 났나보다.
1년에 한번 꼴로 우리 가족은 온천 여행을 했었다.
어른이 된 후, 이 여행들이 마냥 따뜻한 수영장에서 수영배우기 여행이 아닌,
엄마 아빠의 "기도원" 여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요한 결정사항이나, 골치 사나운 고민들이 생길 때,
어려운 통장상황 고려 없이 다섯 식구 가방을 싸서 3박 4일 온천 여행을 떠났던 것이랜다.
지금의 난 그런 엄마 아빠의 기도로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을 알고, 감사히 여기며 살고 있지만,
그때의 난 온천여행이 또 다른 이유들로 기대되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직전의 아침, 그 시끌벅적하고 들뜬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4-5시간 드라이브동안 먹을 간식거리를 챙기는 부엌의 엄마,
4-5시간 드라이브가 가능할 수 있도록 골통 똥차를 점검하는 주차장의 아빠,
두 동생들이 챙길 거 제대로 챙겼는지 디게 시끄럽게 이래라저래라 난리치던 홍길동스러운 엽별,
노래책을 챙기면서 오늘은 무슨 게임을 하며 드라이브를 할지 목소리 핏대 세우던 나
... 그리고 빈이는 ... 그냥 얌전히 있었던 것 같다. (미안하지만 사실 별 존재감 없다.)
그렇게, 아무도 깨지 않은 새벽녘에 우리끼리만 살고 있는 것처럼,
부엌에서 나는 간식거리 향기를 맡으며
작은 집에 다섯사람이 옷장열고 수영복 찾고 가방자크 잠그고...
시끄럽고 정신없던 우리만의 세상이 난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새소리조차 나지 않는 새벽에 브루클린 방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있으려니
갑자기 그 때 생각이 났나보다.
어렸을 때 난,
새 책, 새 공부, 새 여행 ...
참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이젠 어른이고, 머리도 컸으니, 자기 하고 싶은 일 한번 해 보겠다고
언니 손을 놓고, 아빠 차에서 내려버리고, 그렇게 짜잔- 타지에 온지 2년반이 넘었다.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만남/이별이 있었고, 상당히 많은 것이 변했다.
새로운 게 너무 많았기에, 이젠 새 책, 새 공부, 새 여행들이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언니 손 잡고 문구점 가거나, 아빠 차 타고 3박 4일 온천여행 가고 싶을 뿐이다.
내일의 이사가 걱정된다.
다음주의 리허설이 귀찮다.
다음달의 남아공 공연이 부담스럽다.
다음 학기의 예일대 신입생신분이 무섭다.
누가 그러더라. 위 모든 것들은 내가 너무 미래지향적 인간이라 그런 거라고.
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번지 점프하기 전에 어디로 뛰어내릴지 내려다 보면
지레 겁을 먹고 한 세월 못 뛰어내리고 머뭇거릴 수 있잖은가.
혹은, 아예 손을 내저으며 됐다고, 못 뛰겠다고 도망갈 수도 있고.
뒤를 돌아본다.
번지점프를 하겠다고 거기까지 올라간 것, 다리에 밧줄을 동동 매며 용기를 낸 것, (돈을 낸 것)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지 돌아본다면, 난 뛰어내릴 수 있고, 그만한 사람이란 걸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내 뒤를 돌아보면.
내 발로 올라 온 것도 있지만, 내 손으로 밧줄을 맨 것도 있지만,
내 발걸음, 내 손짓보다 훨씬 더 큰 힘이 보인다. 가슴 뛰도록 크게 보인다.
(가슴 뛰는 건 사실 커피 때문일지도 모른다.)
언니 손을 놓는다고, 아빠 차에서 내렸다고, 그들과 떨어져 완전 혼자인 것이 아니었다.
끈. 아무리 5대륙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가족이어도 이어져 있을 수 밖에 없는 힘.
우리의 믿음과 사랑이 한 곳을 향하고 있기에 어디에 있어도 난 혼자일 수가 없다.
(여기서 070 인터넷폰 역시 한 몫을 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 분이 우리 가족의 6번째 구성원이기에,
내가 이 곳에 있고, 내가 이 곳까지 걸음했고, 앞으로 또 뛰어갈 수 있는 건가보다.
그렇다고 해서 다 나아진 건 아니다.
여전히 걱정되고, 귀찮고, 부담스럽고, 무섭다.
음. 그렇지만.
반딱반딱한 바닥위에
이미 다 챙겨져서 차곡차곡 싸인 내 고요한 짐들을 보면서
그 모든 것 위에
아름다운 그리움, 그리고 터질 듯한 기대감이 합하여서.
잠이 오지 않는다.
이제부터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다.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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