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달렸는지,
그래서, 아픈대두, 소화안되두, 엄마 품 생각날만 할텐데두,
지난 사흘동안 끙끙 앓았다.
지금도 내복 위에 츄리닝 위에 목욕가운위에 거위털조끼자켓 위에 양털 담요를 뒤집어 쓰고
무슨 양 한마리처럼 둥실둥실 마룻바닥을 떠다니며 훌쩍 훌쩍 끄억끄억...
타지생활할 때, 아플 때가 제일 슬플 때라고들 하는데.
난 슬프고 뭐고 할 정신 없이, 앉을 때나 누울 때나 죽 끓여 먹을때나.
그대 생각 뿐이다.
무슨 사랑의 열병을 앓듯이, 자꾸 생각 난다.
Penn State 의 기사를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먹먹한 가슴에 숨을 쉴 수 없어서.
처음 첫자를 적어 본,
그 첫 자 몇 자들이 죽어도 안 나오던,
그나마 나온 것들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어서 그냥 랩탑 덮고 마냥 울었던,
어느날은, 어려울 줄 알았던 장면이 너무 쉽게 휘리릭 쓰여져서 기특했던,
어느날은, 샤워하며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내 인물들이 너무 안됐었어서 코를 팽 풀어야했던,
다 써 놓고 보니 쓰레기장도에도 이런 쓰레기가 없을 것 같아 좌절했던,
그래도 어쩌겠나 울며 겨자먹기로 10부 인쇄해서 극작 워크샵에 드밀었던,
워크샵에선 무시무시하고 어마어마한 창피함에 나도 모르게 앙 울어버렸던,
그런데 예상밖의 반응과 10명 극작가들의 응원과 칭찬에 갑자기 어꺠 가벼워졌던,
피드백을 받은 만큼 또 한번 변신을 시도했던,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감이 잡히지 않아, 소화가 안됐던,
그냥 남의 고통을 잡아채 팔아 보려 하는 것 같아, 밤들을 지샜던,
포기하고, 일주일 내내, 쳐다도 안 봤던,
내가 감히 극작?? 집에나 가라.. 이런 자기가학적인 생각을 백만가지 방법으로 떠올리던,
진심으로 11월 말에 인천공항행 뉴욕발 비행기를 약 3시간동안 검색하고 쳐 앉아 있었던,
그러다가
다시
Syracuse 기사를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이번에 뭐 이런 세상에 내가 살고 있나 화가 나서.
또 다시 일주일 간 밤을
새고 또 새고 또 새고,
쓰고 또 쓰고 또 쓰다, 또 엎고.
어찌됐던 46페이지 첫 draft: It's Still Murky 탄생.
아직은 못생긴 자식, 수술이 많이 필요한 자식,
지금도 가만히 앉아 있다가 생각하면 훅- 훅- 손발 오그라들게 하는 자식,
요 놈 들고,
내일 또 다시 2차 워크샵 들어간다
다음 주 월요일에 연출/드라마트루그/교수들이 모인 작은 공간에서 내 목소리로 읽어내린다.
그 다음 주 월욜일에 배우 캐스팅해서 첫 낭독회를 가진다.
그리곤 다음 학기 내내 3차례에 걸친 공연을 올린다.
요 놈 들고.
첫 걸음마는 커녕 첫 울음도 제대로 내지 않은 자식을 들고
벌써 이렇게 덜컹 다른 사람들을 만나려니,
참.
오그라든다.
오그라들어서 잠도 안오는 밤이다.
그래서, 아픈대두, 소화안되두, 엄마 품 생각날만 할텐데두,
자꾸 이 놈 자식 생각 뿐이다.
어떻게 바꿔볼까, 그 장면이 괜찮을까, 누가 캐스팅 될까,
...
아직 열의 잔재 때문인지,
소화도 드럽게 안된다.
(매실차만 100잔째)
Wish me luck for tomorrow, folks.
피드백 | 댓글 1개




